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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흐의 가계(家系)  바흐 작품 개설
 바흐의 생애 - 학습시대  바흐 작품의 양식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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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흐의 생애 - 라이프찌히시대(1723 ~ 1750)  바흐의 간단한 연보
 바흐에 대한 찬사들  


바흐 작품 개설

바흐는 오페라를 제외한 당시의 거의 모든 음악의 영역에 손을 대었고, 거기에 작품생활 초기부터 만년에 이르는 50년 동안 양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현저한 발전을 보여 바흐의 양식을 한마디로 요약해 말한다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그러나 그의 양식의 발전 방향을 염두에 준다면 대강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그의 음악사상에서의 위치는 바로크음악의 종합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그 종합은 여러 가지 양식을 병렬시키거나 혼합시킨 것이 아니라 그의 위대한 개성 속에서 완전히 소화시키고 용해시켜 새로운 모습으로 고쳤다는 특색이 있다.

음악사가 만프레드 부코프쩌가 말했듯이 그것은 <여러 국민 양식의 융합>으로서, 헨델의 경우와 같은 <여러 국민 양식의 조화>와는 현저하게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바흐 음악의 독특한 긴장감은 이러한 여러 국민 양식의 용해와 융합이라는 과정에서 나오는 에너지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즉, 독일의 전통적인 대위법 예술 가운데에서 성장한 바흐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당시에 이미 독일 궁정문화에 침투하고 있었던 프랑스. 이탈리아의 새로운 음악양식을 끊임없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코렐리, 비발디로부터는 이탈리아 음악의 풍부한 조성적 화성을, 협주곡 양식이나 명쾌한 라틴적 조형감을 갖는 프랑스로부터는 클라브생악파의 건반기법과 륄리파의 서곡형식을 채택하였고, 북 독일의 북스테후데, 중부 독일의 파헬벨에게서는 오르간예술을 이어받아 그의 탁월한 개성속에 융합시킨 것이다.

그러나 바흐를 다만 한 시대 음악양식의 종합자로서만 본다는 것은 단편적인 견해일 것이다. 확실히 바흐는 음악의 의식적인 혁명가는 아니었지만 그의 음악에는 용해, 융합과정에서 몇 가지 새로운 요소가 싹트고 있었다. 그의 작품에는 다가오는 고전음악파의 기법을 암시하는 요소를 자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 주목한다면 도일의 석학 하인리히 베셀러 - Heinrich Besseler가 지적했듯이 <개척자로서의 바흐>로 말해도 될 것이다.

바흐의 성악곡에는 교회칸타타, 세속칸타타, 수난곡, 오라토리오, 미사, 마니피카트, 모테트, 가곡 등이 있는데 가장 수가 많은 것이 칸타타이다.
초기 칸타타는 모테트풍 스타일을 계승하고 있으나 바이마르 후기에는 오페라풍의 아리아나 레치타티보가 등장하고, 라이프찌히 초기에는 코랄 칸타타가 많이 만들어 졌다. BWV80 <우리의 하나님은 견고한 성벽이로다 - Ein feste Burg ist unser Gott (1727~1731)>이나 BWV140 <눈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도다 - Wachet auf, ruft uns die Stimme(1731)>이 이러한 대표적인 곡이다.

대규모 성악곡의 대표적인 곡으로는 <마태수난곡>, <요한수난곡>,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를 들 수 있다.

기악곡에는 관현악곡, 협주곡, 실내악곡, 건반악기곡이 있으며 어느 분야에서도 바로크 음악의 총결산이라고 할 수 있는 걸작들을 많이 남겼다.
<관현악모음곡 제2번>, 6곡의 <브란덴부르크협주곡>,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오르간을 위한 <토카타와 푸가 d단조>, <오르간 소곡집 599~644>, 클라비어(쳄발로)를 위한 <프랑스모음곡>, <평균율클라비어 곡집> 등이 각 분야에서 유명한 곡 중의 예이다.

그리고 말년의 <음악의 헌정>과 <푸가의 기법>은 바흐의 대위법 예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대작으로 대부분이 악기를 지정하지 않은 추상적인 성격을 지니며 일반적으로는 특수작품이라 하여 별개로 분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