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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생애 : 아른시타트 뮐하우젠시대(1703 ~ 1708)

아마도 1702년에 뤼네부르크의 고등학교를 졸업한 바흐는 곧 음악가로서 자활을 해야하는 처지였기 때문에, 그 해 8월에 튀링겐 지방의 장게르하우젠 이라는 소도시의 오르가니스트를 지원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사정에서인지 실현되지 못했으며, 1703년 4월에 바흐는 바이마르의 궁정악단에 바이올리니스트로 취직했다. 겨우 3개월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는 이곳에서 바이올린 연주의 경험을 쌓았으며, 독일 바이올린의 대가 베스트호프 - Johann Paul von Westhoff(1656~1705)를 알게되어, 독일 바이올린 악파의 다성적 연주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이것은 훗날에 작곡한 무반주 바이올린곡의 기초가 되고 있다.
그러나, 바흐가 원했던 것은 한낱 궁정악사가 아니라, 집안 가족의 거의 모두가 차지했던 교회 오르가니스트의 지위였던 것 같다. 그의 이 희망은 성취되어, 1703년8월 아른시타트의 교회 오르가니스트로 취임한다.

이 고장은 세바스티안의 조부인 크리스토프 이후 바흐 일족과는 관계가 깊었으며, 세바스티안이 취직했던 <신교회>(현재의<바흐교회>)에서는 새로이 만들어진 성능이 좋은 오르간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고장의 당국자들도 바흐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겨우 18세인 그에게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높은 급료를 주기도 했다.

오르가니스트로서 일하는 한편, 성가대를 훈련시키는 것도 그의 의무였으나, 혈기왕성한 그는 젊은 대원들과 충돌하여, 어떤 때는 대원중의 한 사람과 거리의 난투극을 벌인 일도 있었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1705년 10월에 바흐는 1개월의 휴가를 얻어 북 독일의 소도시 뤼베크를 방문하여, 당시 최대의 음악가의 한 사람이었던 븍스테후데의 연주를 들었다. 그의 장려한 오르간곡이나 칸타타에 완전히 매료되어, 아른시타트로 돌아온 것은 4개월 가까이나 지나서였다. 시의 성직회의에서는 그의 무책임을 엄격하게 견책했으며, 오르간 코랄의 연주에 별로 들어보지 못하던 악구를 많이 혼입시켰다는 점과, 성가대의 훈련을 게을리 했다는 점도 곁들여 바흐를 비난했다.

이 시대는 바흐가 오르간 연주와 작곡의 기초를 굳혀, 서서히 자기 양식을 형성하고 있던 시대로서, 전주곡과 푸가, 혹은 토카타와 푸가에 북스테후데의 영향이 뚜렷이 나타나 있다. 유명한 BWV565 <토카타와 푸가 d단조 - Toccata and Fugue in d minor>도 그 가운데의 하나이다.
클라비어 작품으로는 1704년에 쓰여진 BWV 992 <카프리치오<사랑하는 형의 여행에 즈음하여> B플랫장조 - Capriccio in Sopra la lontananza del suo fratello dilettissimo in Bb Major >가 유명하다.

아른시타트의 성직회의와 충돌한 바흐는 1707년6월에 중부독일의 소도시 뮐하우젠에서 새로운 직장을 구했다. 성블라지우스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서 당시의 유명한 음악가 알레의 후임이었다.

그해 10월에 이미 아른시타트에서 사귀었던 육촌 누이동생인 바르바라와 결혼했다. 훗날 이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일곱 자녀 가운데에서 장남인 빌헬름 프리데만과 차남 칼 필립 엠마누엘은 특히 뛰어난 음악가로 성장했다.

뮐하우젠에서의 바흐는 오르가니스트로 활약하면서 교회칸타타의 작곡에도 힘을 기울여, 1708년2월 市의 참사회원 취임식을 위해 BWV71 <하나님은 나의 왕이시도다 - Gott ist mein König>를 작곡했다. 북독일악파의 양식에 의한 이 장려한 작품은 바흐의 생전에 인쇄, 출판된 단 하나의 교회칸타타이다.
또한 BWV131 <주여,깊은 심연에서 당신을 부르나이다 - Aus der Tiefen rufe ich, Herr, zu dir(1707)>와 <애도행사 - Actus tragicus>의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제106번 <하나님의 세상은 최상의 세상이로다 - Gottes Zeit ist die allerbeste Zeit(1707)>도 이 시대의 명작으로 손꼽힌다.

그런데 당시의 뮐하우젠은 다분히 교리주의에 빠져있던 루터 정통파와 개인의 종교감정을 소중히 여기는 경건주의와의 싸움에 휩쓸리고 있었다.
바흐 집안은 대대로 루터 정통파에 속했었으나, 바흐 자신은 경건파에로 마음이 끌려 그 영향은 그의 작품에도 잘 반영되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