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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햐의 바흐 쳄발로 레코딩  

[무반주 첼로 모음곡(BWV1007~1012)]

*** 게시판에 올라왔던 BACH2138님의 글입니다. ***

ㅡ천상을 치닿는 무한 선율ㅡ

저번에 한번 올렸던 글인데 약간 더 업데이트한 글입니다.

[Ⅰ.곡에 관하여]
[Ⅱ.파블로 카잘스와 무반주 첼로 모음곡]
[Ⅲ.무반주 첼로 모음곡 감상에 도움이 될 이야기]
[Ⅳ.곡 해설]
[Ⅴ.이곡의 명반들]
[Ⅵ.글쓴이가 가장 아끼는 음반들]
[Ⅶ.글을 맺으며]

Ⅰ.곡에 관하여

이 곡은 그의 창작열이 가장 고조되던 시기인 쾨텐시기(1717~1723)의 작품이다. 이 시기는 바흐에게 있어서 가장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한 때였다. 이때 많은 기악곡들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은 그 시기의 비교적 자유스러운 분위기 영향이 크다고 한다. 비슷한 형태의 곡인 무반주 바이올린곡이나 무반주 플룻 파르티타 곡도 이 시기의 작품이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보다 30여년 전에 작곡된 최초의 무반주 형태인 첼로곡인 가브리엘리(D. Gabrielli)의 리체르카레(Ricercare/ 1689)가 있는 것을 보면, 무반주 첼로 형태의 이러한 기악곡도 다른 무반주 작품(예컨대, 무반주 바이올린곡)처럼 바흐 스스로가 창조한 영역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의 무반주 모음곡은 바로크 모음곡의 성과를 종합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들 6곡의 모음곡들을 분석해 보면, 그 모음곡들 중 5개만(제1번~5번)이 첼로를 위한 것이었다. 6번째 모음곡 D장조는 바흐 자신이 고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비올라 폼포사(viola pomposa)라는 악기를 위한 곡이라고 전해져 왔는데, 이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즉 바흐는 5현의 비올라 폼포사라는 이런 악기를 발명하지도 않았으며, 바흐의 작품이 이 악기로 연주되었을 가능성 또한 낮다는 것이다. 이들은 오히려 여러 사용 례를 들어 비올론 첼로 피콜로라는 5현 악기의 사용을 주장한다. 현재 원전연주를 보면 이 6번 모음곡을 비올론 첼로 피콜로로 연주하는 것(안너 빌스마나 비스펠베이등의 원전연주자들이 이를 지지)을 자주 볼 수 있다. 물론 6번도 현대 첼로로 어렵살이 연주할수 있지만, 비올론 첼로 피콜로로 연주하면 좀더 풍성한 맛을 주는 장점이 있는건 사실이다.

바로크시대에는 춤곡 형식을 사용하여 곡을 만드는 것이 유행하였었다. 바흐의 경우도 이러한 무곡을 사용한 것을 일반적으로 볼수 있는데, 그에 이르면 단순한 무곡이 아니라 더욱 음악적으로 승화되어 다가올 고전파 음악의 터전이 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형식적으로도 순음악적으로 발전해 나갔으며 그 내용도 점차 인간으로 옮겨가는 과정에 있었다.

바로크시기의 무곡은 알레망드, 쿠랑트, 사라방드와 지그로 연결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바흐는 이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서 미뉴에트.부레.가보트등의 전통적인 다른 무곡을 사라방드와 지그 사이에 제각기 제5곡으로 배치하여 형식에 변화를 꾀하였으며, 전주곡을 서두에 부가하여 곡의 도입적 성격을 강조하였다.

일반적으로 선율악기에 반주가 필요한 기본적 이유는 음악적 진행에 있어서 화성의 틀을 벗어나지 않도록 이끌어 주는 기능 때문이라고 한다. 바이올린과 마찬가지로 첼로라는 악기는 기본적으로 선율 악기로서 반주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이른바 비자족적인 악기이다. 즉 홀로서기가 힘든 악기이다. 이런 사실을 바흐도 모를리 만무했을 것이다. 그래서 무반주곡에서 발휘된 그의 음악적 역량은 최고의 모험이자 실험정신의 산물이다. 선율라인을 유지하면서 화성적인 맛을 부여하고 대위법적 느낌을 부여하기 위해 인접한 사용가능한 현을 총동원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3줄 더 나아가 4줄 까지도 동시에 연주하도록 작곡하고 있는데, 이는 무반주 첼로 모음곡(무반주 바이올린곡도 마찬가지이지만)의 작곡에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곡 연주시에는 연주자의 높은 음악성이 요구된다. 선율미를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화성적인 조화와 대위법적인 느낌을 표현해야 하고 나아가 음악의 내용도 채워야 하므로 2중 3중의 어려움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연주의 테크닉에 있어서도 활을 현에 최대한 밀착시키고 건반 악기적인 시각에서 연주할 것을 기본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악보를 놓고 보면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무반주 바이올린곡에 비하면 보다 단순하고 대위법적인 면에서도 그 정교성이 덜함을 알수 있다. 무반주 바이올린곡의 샤콘느 악장이나 푸가 악장을 보면 그것은 확연하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을 바흐는 첼로 선율자체의 심오하고 두툼한 음색의 아름다움으로 극복하고 있다. 그 음악적 결과는 성공적이며, 또한 카리스마 같은 대중적 사랑을 향유하고 있다. 다만 무반주 바이올린곡이 그 분야에서 비교적 확고한 해석의 틀이 닦여 있다고 상정한다면,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첼리스트들이 목적의식을 가지고 매진해야 할 숙제라 할 것이다. 특히 원전연주 분야에서는 더욱더 많은 발전이 있어야 할 것이다.

Ⅱ.파블로 카잘스와 무반주 첼로 모음곡

1876년 스페인의 카탈로니아에서 태어난 카잘스는 11세무렵 첼로의 인간미 넘치는 선율에 매료된 이래 한평생을 첼로와 같이 한 음악가이다. 그는 현대 첼로의 연주에 있어서 솔로 악기로서의 진정한 모습과 가능성을 부각시킨 첼리스트로 인정 받고있다. 또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발굴과 연주및 최초의 레코딩등도 그를 독보적인 존재로 만드는 신화적 일들일 것이다. 그는 질곡같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시절을 거치면서 고뇌의 삶을 살기도 하였다. 음악 여정중에 카잘스는 일류의 멤버들과 실내악 활동을 하기도 하였으며, 만년에는 지휘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80세의 나이에 20세의 제자 ‘마르티타 몬테스‘와 결혼 하여 크게 회자된 일도 있었다. 그는 1973년 96세의 나이로 어머니의 고향인 푸에토리코에서 타계했다.

1889년 바르셀로나의 한 악기점에서 카잘스에 의해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악보가 발견되었다. 이것은 바흐의 음악을 살찌운 위대한 발견이었다. 바흐가 죽은 1750년을 기산점으로 하더라도 근 140여년 가까이 사장되어 있었음을 알수 있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진정한 주인을 제대로 만난 셈이었다. 마태수난곡이 멘델스존에 의해서 그 의미가 재부여 되거나, 골드베르그 변주곡이 글렌굴드에 의해 대중에 각인되어 그 의미가 재발견 되었듯이, 이곡도 카잘스에 의해 발견되고 생명력이 부여되어, 지금까지도 카잘스의 분신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가 이곡에 부여한 연주의 규범은 많은 첼리스트들의 시금석이 되고 있다. 첼로의 경우는 연주자세도 바이올린보다 훨씬 불리하며, 활의 인장력도 높아 힘의 안배도 문제가 되며 또한 연주시 잡음(명반으로 대접받는 야노스 슈타커의 무반주 첼로를 들어보라!)이 많이 나는 악기자체의 문제 때문에 바이올린에 비해 그때까지도 열등한 대접을 받았다.(협주곡의 수와 위상을 보라!) 그런데 이런 문제점들이 카잘스에 의해 많은 부분 해결 되었다. 그의 덕택으로 첼로라는 악기가 가장 인간적인 악기로 새로 태어나게 한 것이다. 첼로가 노래하는 부드럽고 남성적인 울림이 그냥은 얻어 진 것이 아니라 카잘스라는 음악가의 각고의 노력의 산물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의 분신처럼 따라다니는 역사적인 무반주 첼로 레코딩은 그를 첼로의 성자로 까지 규정하게 한다.

카잘스는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발견한 이래 거의 매일 연구와 연주에 몰두하여 12년 정도 지난후 비로소 공개연주회를 가졌다 한다. 그후 다시 35년 정도 지나서 그의 역사적인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녹음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 음반은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논함에 있어서 결코 빠뜨려서는 안될 시금석이 되고있다. 현재 많은 첼리스트들이 이곡에 도전하고 있지만 그와 필적할만한 음반은 그다지 많다고 보지 않는다. 그의 연주를 들어 보면 낭만적인 면, 엄정한 면, 순수한 면이 자연스럽게 배합되어 있음을 느낄수 있다. 카잘스 이후의 연주를 들어보면, 어떠한 시각을 달리하는 연주도 카잘스가 세워 놓은 해석의 틀 아래에 놓여 있음을 알수 있다. 그의 음반의 훌륭함은 60년 넘게 시간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 인류가 존속하는 한 그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영원할 것이다.(카잘스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들은 http://www.happychron.com/casals/index.shtml로 들어가 보세요! 정리 잘해 놓았습니다.)

Ⅲ.무반주 첼로 모음곡 감상에 도움이 될 이야기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는 전주곡-알레망드-쿠랑트-사라방드-미뉴에트/부레/가보트-지그등이 각 모음곡마다 순서대로 사용되어져 있다. 음악 감상을 위해 아래에 간단한 핵심적인 특징을 기술해 보았다. 이것만 알고 있으면 감상에 별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불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제1곡/ 프렐류드(Prelude)

곡의 특징은 대부분 도입적 성격을 지니며, 자유스럽고 즉흥적인 분위기를 띤다.

제2곡/ 알레망드(Allemande)

독일에서 유래한 춤곡. 신중한 느낌. 멜로딕하다. 알레그로와 모데라토 사이의 적당한 빠르기의 속도를 지니고 있다. 연주자에 따라 느리거나 빠르게 연주될 수 있다.

제3곡/ 쿠랑트(Courante)

빠른 속도의 춤곡. 정치한느낌. 리드미컬한 느낌. 두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빠른 형식이 특징인 이태리식[코렌테(Corrente)]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약간 느린 형식의 프랑스식이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서의 쿠랑트는 일반적으로 빠른 속도로 연주된다.

제4곡/ 사라방드(Sarabande)

스페인에서 유래한 장중하고 무거운 느낌을 깔고 있는 3/4박자의 느린 춤곡이다. 아다지오 악장처럼 명상적인 정서를 깔고 있다.

제5곡:미뉴에트(제1,2번)/ 부레(제3,4번)/ 가보트(제5,6번)

①미뉴에트(Minuett)

프랑스무곡. 귀족적이며 우아한 느낌을 주는 다소 빠른 형태의 춤곡이다.

②부레(Bourree)

프랑스 무곡. 빠르고, 안정된 경쾌한 춤곡. 류트 모음곡 제1번에 사용된 부레는 다소 비트있는 박자와 선율로 인해 현대 락음악에서 원용되기도 한다.

③가보트(Gavotte)

프랑스에서 유래한 2/2/박자의 활달한 춤곡이다.

제6곡/ 지그(Gigue)

영국에서 유행했던 빠른 춤곡. 분위기의 상큼한 전환. 피날레적 성격을 띤다.

Ⅳ.곡 해설(글쓴이가 음악을 듣고 느낀대로 쓴 글임)

제1번 BWV1007 G장조

무심한 듯 늘어선 16분음표의 극히 단순한 화성적인 전주곡 부분이 신비롭게 느껴지는데, 경쾌함과 명랑함이 G화음을 넘나들며 대위법적 효과를 부각시킨다. 바흐가 이렇게 단순히 화음을 펼치듯이 악상을 전개하는 방식은 평균율 제1번과 류트곡 BWV999에서 보이는 방식이다. 이러한 작곡 기법은 바로크시기에 널리 행해진 것이라고 한다. 일견 우주적인 느낌이 든다. 알레망드는 화성적인 깊은 맛이 어우러져 나오는 정적이고 평화로운 느낌을 준다. 쿠랑트는 여기서 매우 경쾌하게 쓰여져 있는데, 마치 널뛰기 하는 것처럼 활기차고 자신감있는 인상을 풍긴다. 사라방드는 알레망드를 더욱 부드럽게 변화를 준 느낌이다. 아주 심오한 철학자의 이야기처럼 가슴을 파고드는 선율이다. 다만 프랑스 출신 첼리스트 앙드레 나바라(Andre Navarra)는“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모든 사라방드는 포르노다.” 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그의 말처럼 관능적으로 볼 여지도 충분히 있는 것 같다. 제5곡으로 사용된 미뉴에트는 건강한 느낌을 주며, 마지막의 지그는 상큼한 느낌을 주는 곡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이러한 분위기의 반전을 통해 지그는 곡 전체를 결론짓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본다.

바흐에 이르면 이런 단순한 형태의 음악이 가장 심오한 것 인지도 모른다. 그속에 담긴 내용 혹은 담길 내용을 끄집어 내기가 매우 어렵다. 그것은 바흐 음악이 갖는 무색 투명성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전 6곡 가운데 가장 추상화 되어 있으며 비교적 규모도 적은 곡이다. 이곡은 대중적으로도 많이 알려진 곡이다. 글쓴이도 아마 가장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습고도 놀라운 사실은 제1번 G장조가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너무나 추상적이고, 막연하니 그 끝을 알기 어렵다. 누구인가 바흐음악을 회화적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일리있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 다다르면 그 말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 것 같다. 이 발언을 돌려 말하면 그만큼 바흐음악의 내용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 제1번을 가장 명쾌하게 각인시키는 연주는 "요요마"와 "안너 빌스마" 인듯 하다. "요요마"는 이곡의 경쾌하고 정겨운 느낌을" 음악의 정원" (DVD음반을 감상해야 제격임) 이라는 주제로 표출시키고 있으며, "안너 빌스마"는 정반대의 시각에서 비교적 느린 템포로 망망대해 같이 우주를 거니는 저 보이저호 같은 느낌(특히 92년반)을 선사하고 있다. 그러면 다른 감정이입은 불가능할까?(예컨대, 카잘스는 유유자적한 느낌을, 로드스트로비치는 가볍고 관능적인 느낌을, 푸르니에는 무상무념의 심적 상태를 곡에 주입하고 있다고 보여짐) 물론 가능할 것이다. 다만, 그것은 탁월한 혜안을 갖춘 연주자와 사려깊은 청중 혹은 감상자의 몫일 것이다. 글쓴이 개인적으로는 1번 모음곡에 관한한 빌스마와 푸르니에의 해석을 가장 높이 평가한다.

국내영화 “동감”에서는 몇 개의 바흐 작품이 삽입(바흐 음악이 회화적이라는 것은 영화에서 많이 원용되는 것을 추단해보면 알수 있기도하다.) 되어 영상미를 북돋아 주었는데,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중의 전주곡과 지그, 그리고 첼로 모음곡 2번 중의 전주곡과 지그를 들을 수 있다. 아름다운 장면과 어우러진 바흐는 또 다른 의미에서 이 추상적인 음악에 다가가는 촉매역할을 할 것이다.

제2번 BWV1008 d단조

전6곡 가운데 가장 선율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극히 내향적이고 동양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 단조선율이 주는 멜랑꼬리하고 비극적인 느낌(이곡은 전반적으로 적적한 느낌이 듬)이 곡의 명상적 성격과 어우러져 묘한 운치감을 자아낸다. 일반적으로 장조곡 보다는 단조곡이 훨씬 설득력 있게 와닿는다고 하는데, 전주곡은 3/4박자의 느린 템포로 삶의 아련한 비애을 자아내게 한다. 선율적으로 흐르다가 뒷부분으로 가면 아르페지오형으로 악상이 전개되며 자유스러운 느낌을 준다. 알레망드는 응어리진 가슴을 호소하듯이 다가온다. 역시 정적인 느낌이 들지만 약간 항의적인 뉘앙스도 풍긴다. 중음주법으로 화성적이고 대위법적으로 느껴지는 악곡이다. 쿠랑트는 역시 빠르고 경쾌하게 진행한다. 앞의 알레망드와 일정한 한도내에서 대비감이 느껴진다. 사라방드는 여기서도 아다지오 악장처럼 감정을 심연의 세계로 천착시키는 느긋함을 보여준다. 곡이 사라방드에 이르면 절정에 다다른 느낌을 받는다. 제5곡으로 안배된 두 개의 미뉴엣은 장.단조의 대비감을 보여주는데, 고결함과 귀족적 기품이 이곡에 녹아져있다. 마지막 곡인 지그는 여기서도 앞의 미뉴에트와는 많은 부분 대조를 보이고 있으며 곡의 분위기를 좀더 긍적적으로 바꿔나가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 같다. 마지막을 향한 힘찬 전진이랄까!

이 곡은 삶의 비애감이 잘 반영되어 있으며 아주 호소력이 있어서 음악적으로 그 순도가 매우 높다. 바흐음악이 다 그러하겠지만, 가라앉는 정서를 담고 있는 곡이더라도 결코 우울한 방향으로 악상이 진행되지는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미래에 대한 희망의 비상이 그 기저를 깔고있다. 이는 낭만파 음악가들의 많은 음악들과는 차이가 나는 부분일 것이다. 제2번 d단조를 가장 잘 연주하는 이는 개인적으로 "파블로 카잘스" 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곡을 극히 절제된 시각으로 마치 독백을 읍조리듯이 노래한다. 그의 음반은 몇개의 판(통상 EMI판이 대표적으로 애호가에 회자됨, 그런데 너무 날카롭게 녹음되어 있어 아쉬움을 줌)이 존재하는데, 일본에서 복각된 음반이 연주음질은 잡음이 많아서 비록 열악할지언정, 곡의 내면을 아주 심도있게 포착해 내고있다. 첼로가 노래하는 부드러운 저음부의 목소리로 오래전의 기억을 자극하여 청춘의 애상감을 일깨워 주는 듯하다. 약간의 어두운 정서가 있지만 그는 이것를 희망의 미래를 위한 반전의 대상물로 보는 느낌이 든다. 악상의 전개에 있어서도 지나친 과장이나, 경박함이 보이지도 않는다.

이 제2번 곡을 들으면 저 지리산 피리 소년 한태주 군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는 '오카리나'라는 조그마한 피리를 자신의 몸처럼 다루는 천재 피리소년인데, 한군은 자신의 나이에 걸맞지 않을 매우 심도높은 삶의 한 단면을 노래하고 있다.(오카리나라는 이악기는 특히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음악의 연주에 사용된 악기이기도 하다. 그의 오카리나 음반을 한번 들어보라! 외로움이 뭔지를 일깨워 줄것이다!) 그 단면은 바로 외로움에 대한 본원적 향수일 것이다. 인간은 어쩌면 이러한 향수를 그리워하고, 더 나가 그것을 지향하는지도 모른다. 요요마의 DVD음반에서도 감옥을 무대로 설정하여 속박하는 현실에 대한 인간성의 해방구로 여기도 이곡을 해석한듯하다. 어찌하였던, 이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제2번이 발산하는 적적함과 명상적 느낌에는 인간 본연에의 향수가 담겨 있는 것 같다. 그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느끼는, 아련한 기억속의 때묻지 않은 어린시절의 그리움인지도 모를 것이다. 이곡이 부여하는 에스프리는 그지없이 드넓은 초원위를 드리우는 단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3번 BWV1009 C장조

이 3번 모음곡은 전 6곡중에서 역동적인 아름다움으로 첼로의 남성적인 맛을 표출하고 있다. 가장 인기가 많은 곡이기도 하다. 전주곡은 정적을 깨뜨리듯이 파워풀하게 옥타브를 순차적으로 하강 진행하는 형식으로 곡을 시작한다. 곡이 전개될수록 선율적인 면과 화성적인 면이 교묘하게 교차되고 있으며, 무곡적인 리듬감이 곡 전체를 초지일관하고 있다. 더블스톱과 아르페지오를 적절히 안배하여 건반악기적인 느낌도 주고 있다. 알레망드는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서 사라방드에 다음가는 다소 느린 악장인데, 여기서도 중후한 맛이 감돈다. 다만 약간 장난스러운 느낌이 들기도한다. 쿠랑트는 아주 빠르고 경쾌하게 만들어진 악장이다. 전반적으로 흥겨운 맛이든다. 사라방드는 여기서 그지없이 아름다운 선율로 쓰여있다. 철학적인 심오함이 흐르고 풍부한 감성은 무곡의 존재를 잊게 할 정도이다. 부레는 아주 빠른 춤곡으로 여기서는 악센트를 동반한 비트있는 선율진행이 무곡적 성격을 더욱 고양시킨다. 득의에 찬 적극성이 돋보이는 악곡이다. 마지막의 지그도 나머지 모음곡처럼 피날레의 역할을 잘 수행한다. 아주 활기찬 곡이다.

전주곡을 제외하고 나머지 곡명들이 춤곡형식의 명칭임을 감안한다면, 제3번은 그 이름에 걸맞는 음악이라고 할 것이다. 이곡은 들으면 어깨춤이 나올 정도로 흥겹다. 글쓴이는 개인적으로 이곡을 전 6곡 중에서 가장 좋아한다. C장조 조성이 주는 평안함과 곡 전체를 지배하는 리드미컬한 선율은 한겨울의 삭막함도 녹일수 있을 것이다. 이곡을 듣다보면 감정의 정화도 느낄수 있다. 세상의 묵은 때를 씻어내리는 시원한 바람같은 음악이다. 몇년 쌓인 채증도 내려갈 것 같기 하다. 약동하는 듯 강하게 뿜어져 나오는 첼로 선율에서 첼로가 도대체 선율악기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드는데, 바흐의 솜씨에 새삼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곡의 현대적 의미를 부여하는 탁월한 해석으로 빠뜨릴 수 없는 연주로는, 요요마의 DVD음반을 꼭 들어야 할 것 같다. 그의 음반은 어찌보면 단순한 뮤직비디오 음반 일수도 있지만,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현대 무용이 절묘하게 조화된 종합 예술의 성격을 띈다고 할수있다. 무용수들의 너울대는 춤추는 몸짓, 고풍스런 의상, 춤과 음악의 관념적 조우, 안무가의 독특한 연출력이 첼로선율과 멋지게 어울어져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다. 사실 첼로선율 하나만으로 보면 그의 연주는 다른 명인들에 비해 다소 왜소(약간 힘이 부족한 듯이 느껴짐)하게 느껴지지만, 무용과 어울어진 그의 음악은 남다른 매력을 지닌다. 과연 그 이름 그대로 “바흐로 부터의 영감”이라 할만하다. 생각이 기발하다!

이 무반주 첼로 모음곡 3번을 가장 잘 연주하는 이는 개인적으로 "피에르 푸르니에"라고 생각한다. 첼로의 생생한 맛이 조금의 과장없이 표현되어 있으며, 마치 실연을 듣는 것 처럼 녹음되어 있다. 악상의 전개도 매우 순수하고, 숭고한 맛도 잘 표현해 내고 있다. 3번은 6번과 더불어 비브라토를 가장 절제하여야 할 곡이라고 생각하는데, 피에르 푸르니에도 이를 직시하고 극히 엄정한 방향으로 음악을 풀어 나아간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면의 뜨거운 열정이 곡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이는 "음악적인 표현은 객관적으로 그 속에 담긴 혹은 담길 음악적 내용은 주관적으로" 라는 바흐 해석의 암묵적인 패러다임 을 제시하고 있는듯하다.

제4번 BWV1010 E♭장조

이 4번 모음곡은 1번과 더불어 그 내용의 이해가 매우 어렵다고 생각된다. 이곡을 오랫동안 들었지만, "불가지론적(agnostic)“이라고 할 만큼 그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사실 바흐곡들 중, 특히 기악곡들에는 그 내용 파악이 힘든 것이 엄청 많다. 이는 추상적으로 만들어진 바흐 음악의 무한한 해석가능성 이라는 그 특성에 기인한 때문일 것이다. 전 6곡의 전주곡중 가장 소박한 전주곡을 갖는 것이 그 이유인지도 모를것이다. 모음곡 형식의 곡이라 하지만 그 내용전개에 있어서는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일체로 봐야 할 것 이기에, 전주곡은 곡의 성격을 규정짓는 요소로 매우 중요하다.

전주곡의 다소 밋밋한 진행은 곡 중반부의 카덴짜같은 자유스런 움직임으로 대체되고 있다. 전반부의 흐름은 건반음악의 전주곡과 유사하다. 전주곡 전체가 주는 느낌은 내향적이며, 엄정하다. 곡이 진행될수록 신중함이 느껴진다. 이 전주곡에서는 뭔가 혼돈된 느낌, 탄식과 자조의 느낌, 애매모호함, 막막함 가운데의 희망의 빛, 불안한 장래에 대한 무언의 희망, 고독한 지도자의 고뇌 등의 정서가 느껴진다. 알레망드는 비교적 간결한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약간의 감정 전환이 있으며, 다소 정화되어 뭔가, 음악의 본궤도에 진입한 느낌이 든다. 그 움직임은 한층 발랄하다. 또한 다소 유유자적한 맛도 보인다. 이곡의 쿠랑트도 여유로운 느낌과 자조적인 느낌이 든다. 다른 곡의 쿠랑트에 비하면 극히 엄정하고 내성적이라고 본다. 약간 빠르지만 풍부한 감정을 갖는다. 사라방드는 화성적인 맛과 선율적인 맛을 비교적 잘 표현한 악곡으로 이곡의 분수령이 되는듯하다. 곡 전반에 걸쳐 세상의 이치를 다 깨달은 구도자의 모습처럼 겸손함이 보이며 위엄과 고뇌감이 서려 있는듯하다. 부레는 생기 넘치는 활발한 무곡으로 자신감을 되찾은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아직은 불안하지만 앞으로는 잘되리라는 그런 희망을 갈구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서도 부레를 두개로 배치하여 곡의 대비감을 주고 있다. 마지막곡인 지그는 마음의 안식과 평안을 추구하는 느낌이 든다. 매우 빠른 악곡으로 일견 독자행보를 하는 것 같지만 어느 모음곡 보다도 이 4번에서는 지그의 역할이 큰 것 같다. 곡 전체가 한편의 드라마처럼 인과적으로 연결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해피엔딩적 결말을 유도하는데에 이 지그가 일조하는 것 같다. 부레와 지그는 그 유명세에 힘입어 단독으로도 연주되는 일도 많다.

이 4번 모음곡은 지금의 사회모습과 비슷한 일면을 가지는 것 같다. 여러 독립적인 선율들이 제각기 불협 화음으로 움직이는 무언가 정돈되지 않은 모습, 힘든 사회.경제상황,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저마다의 주장속에서 다소 자조적인 체념이 뒤썩인 이 사회 전반을 마치 예견이라도 한 듯이, 몇 백년전에 바흐는 양의 동서를 넘어 첼로라는 심오한 악기로 지금을 노래하는 것 같다. 이 4번 모음곡이 전달하는 강력한 멧세지는 누구의 말처럼 “지금의 상황은 구름에 가린 달과 같다. 그 구름들이 걷혀질 때, 그 진가가 나타날 것이다.” 라고 깨우쳐 주는 충고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4번을 가장 잘 연주하는 이는 개인적으로 푸르니에라는 생각이 든다. 프레이즈를 별 과장없이 덤덤이 앞으로만 내닿는 그의 연주는 이 4번이 징표하는 모습과 가장 부합하는 것 같다. 그 자신이 신체 장애자였으므로 누구보다도 내면적 갈등 상황을 잘 알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연주에서 뿜어져 나오는 귀족적이고 품격높은 음색은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옮긴 것 때문이리라! 그의 삶의 체취가 풍겨져 나온다. 훌륭하도다!

제5번 BWV1011 c단조

이 5번은 여타의 곡과는 달리 변칙튜닝(스코르다투라)으로 연주할수 있는 곡이다. 제1번 현을 A음에 튜닝(정상적인 튜닝)하거나 G음에 튜닝하여 연주할수 있는데, 한음 내려서 G음으로 연주하는 것은 스코르다투라를 요한다. 연주자들에 따라 정상적인 튜닝으로 연주하는 이(카잘스가 이를 지지, 일반적임)도 있고, 변칙튜닝으로 연주하는 이(안너 빌스마.비스펠베이등의 원전 연주, 현대 악기 연주자로는 모리스 장드롱등이 이를 지지)도 있다. 귀로만 평가하는 글쓴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변칙튜닝으로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상적인 튜닝을 견지하는 논거를 보면 음색의 자연스러움과 웅장함을 든다. 그런데 이 5번의 가장 단점이 전주곡 연주에서의 지나친 음향이라고 생각한다.(물론 분산화음처리하면 둔중함을 없엘 수 있을것임) 카잘스 연주도 음향상 지나치게 둔중한 감을 지울수 없다. 곡이 원낙 호방하게 만들어 져 있으므로 어떻게든 음향을 줄여서 연주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스코르다투라를 이용한 안너 빌스마의 연주를 들어 보라!(신반이든 구반이든) 아주 이상적인 음조를 견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정상적 튜닝을 하더라도 전주곡의 울림이 많은 해석은 견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요요마의 해석은 어떤 방식에 따랐는지 잘 모르겠으나, 그의 해석이 상당한 설득력을 주는 것도 바로 이 절제의 미학의 산물일 것이다.

c단조 조성이 주는 심각하고 준엄한 느낌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2번 곡과는 대조적으로 외형적인 일면도 보여 주고 있다. 일종의 투쟁적인 성격이랄까? 아니면 고고한 인품을 갖춘이의 열열함 이랄까? 우선 전주곡(프랑스풍의 서곡의 형태를 취하고 있음)의 위용이 가져다 주는 중후함이 탁월하다. 이런 중후함과 신중한 정서는 각곡의 대비감과 맞물려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전주곡의 특징은 첼로 모음곡중 유일하게 푸가를 원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비탄적인 뉘앙스를 풍기며, 중반부 부터는 약간 활기를 찾은 느낌을 준다. 알레망드도 전주곡의 연장선에서 애절한 뉘앙스을 지속시켜주는 느낌이다. 쿠랑트는 무곡적인 활발함을 간직한 곡으로 도전적인 느낌을 준다. 사라방드는 비애의 정서의 극치를 보는 듯하다. 다소 염세적인 느낌도 전한다. 가보트와 지그는 곡 전체의 분위기치고는 활발한 편이다.

이 5번을 가장 잘 연주하는 이는 개인적으로 안너 빌스마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 5번을 마치 가지고 놀듯 연주하고 있다. 전 6곡 중에서 첼로 선율로서는 다소 둔중하고 무거운 느낌을 지니고 있는 이곡의 특성과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빌스마는 이곡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고 있다. 79년 녹음과 92년 녹음 모두 최고의 음악성을 보여 주고있다. 79년 녹음은 다소 빠르고 경쾌한 느낌을 가져다 주며, 92년 녹음은 템포를 다소 느리게 하지만 속도의 완급을 조절하여 곡의 중심부에 이르면 속도를 약간 빠르게 하여 긴장감을 주는 식으로 연주하고 있다. 즉, 즉흥적인 연주패턴인 템포 루바토를 곡에 도입하여 다채롭게 전개하고 있다. 극히 어두운 음조의 가라앉는 거트현의 울림은 심오하고 철학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곡이 발산하는 심각하고 어두운 정서를 멋지게 재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은 종래의 어떤 연주자들의 음악보다도 신선하다.

요요마의 "바흐에의 영감"에서는 일본의 전통예술 가부키를 5번과 매치시키고 있는데, 요요마와 안무가가 불어 넣으려 한 내용은 자유를 향한 내적 열망일 것이다. 이러한 열정이 은근하고 고즈넉한 운치감과 어우러져 절묘한 예술성을 표출시키고 있다. 요요마의 5번은 연주 자체만으로 보아도 그 완성도가 우수하다고 생각된다. 가부키 배우의 연기 또한 아름답기 그지없다. 요요마의 DVD음반은 반드시 들어 보아야할 레코딩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제6번 BWV1012 D장조

이 6번은 규모가 크고 음역도 가장 넓게 만들어져 있다. 곡이 부여하는 느낌도 매우 대담하고 남성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프렐류드의 낮은 음의 메아리 같은 음의 울림이 묘한 운치를 자아 낸다. 약간 격정적인 느낌도 있으며 파도처럼 밀고 나가는 힘을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 모음곡의 마지막 곡답게 아주 활달하고 호방하게 마무리 짓고 있는데, 이는 무반주 바이올린곡의 제3번 파르티타과 대비시켜 보면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이 6번은 곡간의 대비 효과가 어느 모음곡 보다도 탁월하다고 보여진다. 동적인 격렬한 선율과 명상적인 안정된 선율을 엇갈리게 안배하고 있어서 전체가 극히 건축적으로 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프렐류드, 쿠랑트등은 전자의 성격이 있고, 중간에 놓인 알레망드, 사라방드등은 후자의 성격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모두 동적이지만, 가보트는 약간 격앙된 느낌을 주고 지그는 혼란한 감정을 추스리는 느낌이 든다. 이 6번은 전반적으로 비브라토나 즉흥적인 장식음은 극히 절제하고 연주해야 좋은 효과를 거둘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곡의 전주곡은 현의 중복 울림 효과를 사용하여 아주 박진감 넘치게 만들어진 곡으로 생동감이 넘친다. 12/8박자의 리드미컬한 자유로운 악곡으로 선율적이기보다는 건반 악기적으로 연주되어야 이 프렐류드의 아름다움을 표현할수 있다. 다소 느리게 연주해야 좋을 것 같다. 알레망드는 '알레망드 그라베'로 되어 있듯이 사라방드에 비견될 정도의 중후함을 지니고 있다. 상당히 명상적인 느낌을 준다. 쿠랑트는 여기서는 매우 아름답게 작곡되어져있다. 아침 햇살 머금은 이슬처럼 지극히 투명하고 건강한 느낌을 전달한다. 마치 무반주 파르티타 제3번의 프렐류드나 가보트 악장처럼 싱그러운 음악이다. 사라방드는 앞의 알레망드를 더욱 내면적으로 심화 시킨 듯 중후하게 심금을 울린다. 경건하고 종교적인 느낌도 있어서 호소력이 크다. 제5곡인 두개의 가보트는 약간 격정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활기차다. 지그는 상당히 빠른 편이며 생동감과 발랄함의 면모를 느낄 수 있는 쾌활한 악곡이다. 지그는 자유로운 정신의 대향연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시원스런 음악이다.

이 6번 모음곡은 저음부와 고음부에 걸쳐 폭넓은 음역을 사용하여서 그런지 듣기에는 첼로소리가 아주 다채롭게 들려진다. 이 6번을 훌륭하게 연주하는 야노스 슈타커의 음반을 들어 보면, 장식음을 극력 절제하고 비브라토사용을 줄이려는 모습을 볼수 있다. 카잘스나 장 막스 클레망의 연주도 이런 측면을 잘 파악하고 있다. 이들 3인이 연주하는 6번을 들으면 가슴속의 뜨거운 감정이 용솟음 치는 느낌을 받곤한다. 이곡이 표출하는 역동적이고 호쾌한 느낌과 중간 중간에 배치된 가슴을 쓸어 내리는 명상적이고 자아 성찰적인 느낌은 수도하는 승려의 끊임없는 번뇌가 생각나기도 한다. 이유야 어떻든 바흐는 바로크시대의 음악가인 점을 생각할때, 세속음악의 범주에 놓인 이들 곡에서 엄숙하고 고요한 종교적인 맛이 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주는 심오한 아름다움 앞에선 어떤 음악도 존재하기는 힘들며, 숭고한 악상에 있어서도 이를 덮을 것은 없을 것이다.

원래의 악기대로 연주한다면 5줄의 악기인 비올론첼로 피콜로(의견이 분분하여 반대견해가 있지만)로 가지고 연주해야 한다. 넉줄의 현대 첼로로써도 어렵살이 연주할수 있지만, 풍성한 연주를 위해서는 비올론첼로 피콜가 나은 측면이 있다. 원전연주를 들어보면 풍성한 맛을 느낄수 있는데, 이는 악기자체의 현이 많음에 기인하는 바가 클 것이다. 다만 지금껏 녹음된 음악을 들어보면 현대첼로 연주가 더 낫다고 본다. 이것은 아직 원전연주가 아직도 시작단계임을 말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Ⅴ.이곡의 명반들

1.글쓴이가 생각하는 명반의 기준

바흐 음악이 다 그렇지만,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경우에도 음악 자체가 간직하는 불가지론적이고 무한한 해석의 여지 때문에 많은 서로 다른 해석의 음반이 존재한다. 또한 음악적인 스펙트럼이 엄청 넓어서 낭만적인 해석도 있고, 고전주의적인 해석도 있으며, 원전연주도 존재한다. 이러한 여러 갈래의 녹음들 중에서 명반을 찾는다는 것은 아주 재미있고 흥미있는 일일것이다. 그런데 바흐 음악의 해석에 있어서 지켜야 할 패러다임을 글쓴이 나름대로 정의 하면 다음과 같다. 물론 극히 주관적인 이야기라서 귀담아 들을 필요는 없다. 첫째 바흐 음악은 낭만성과는 애증의 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을 연주자 스스로 체득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장식음등과 같은 외형적 기교을 극히 절제 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그리고 사용하더라도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의무사항처럼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것 이다. 재량사항이라는 것을 명확히 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셋째, 이것들을 바탕으로 음악의 외적인 표현은 엄정하고 객관적으로 하며, 음악에 담길 내용은 주관적으로 하여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도록 안배하여야 한다. 이런 객관적인 면과 주관적인 면의 조화는 양립 불가한 사실처럼 생각되기도 하지만, 이른바 명반이라고 추앙받는 음반들은 대체로 글쓴이가 내세운 명제를 수용하고 있는것 같다. 물론 위에서 입론한 기준도 글쓴이의 머릿속 생각임에는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글쓴이가 들은 음반(한20여종 정도)이 아직 그렇게 많다고 볼수는 없다. 아직 못들은 음반이 훨씬 많겠지만, 나름대로 형성된 바흐의 틀에 기해 음반을 평가 해보겠다. 그리고 글쓴이가 그다지 손이 가지 않는 더 많은 음반의 빈약한 설명은 다른 분들의 리뷰로 보강했다. 이 리뷰들이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사랑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2.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명반들(글쓴이가 생각하는 최고의 명반)

1)파블로 카잘스/ EMI

카잘스의 이 음반은 무반주연주의 점을 이룩한 불멸의 음악사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으며, 순 음악적으로도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한다. 녹음 년대가 60년 이상을 소급하지만 그의 연주에 필적할 곡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본다. 그는 이 모음곡의 해석에 있어서 다소 낭만적이지만, 나름대로 순수한 인간미를 표현하고 있다. 간혹 음이 갈라지거나, 다소 무리한 장식음 운용(예컨대 루바토의 사용)이 보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매우 탁월한 음악 장악력을 가지고 이곡의 표준적인 연주로서의 위용을 간직하고 있다. 카잘스의 음악을 듣노라면 그가 왜 첼로의 성자 인지를 알게 된다. 현대 첼로의 본연의 모습을 일깨운 그의 연주사적인 공적은 차치하더라도 그가 불어넣은 무반주의 연주 규범은 후배 첼리스트들에게 있어서는 시금석이 되고 있는 것이 지나친 과장은 아닐것이다.

그의 음반은 몇개가 나와 있는데, EMI판이 가장 많이 통용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 복각된 음반도 출시되고 있다. 전자에 비해서 후자는 첼로의 인간적인 맛을 잘 포착하고 있다. 다만 잡음이 지나치게 많은 것은 흠이다. 그러나 글쓴이는 후자의 음반이 카잘스를 좀더 가까이 접할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전자의 음반은 음색이 지나치게 날카로와 첼로의 아름다움을 실종시키고 있는데, 마치 6,70년대의 미디어를 통해서 들리는 어떤 정치인의 목소리 같다. 카잘스가 주는 감명은 그러한 날카로움으로 포장된 카리스마가 아니라 너무도 인간적인 부드러운 첼로 선율이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연주에서 느껴지는 음악적 느낌은 장래에 대한 낙관적인 행복감과 마음의 평안이 그 기저를 이루고 있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글쓴이 생각으로는 제1번은 낭만적이고 여유로운 정서를 불어넣고 있으며, 제2번은 인간적인 향수와 명상및 외로움을 제3번은 마음의 평정심을 제4번은 불가지론적인 무언의 내적인 암시를 제5번은 열열함과 그 이면의 우울한 정서를 제6번은 번뇌와 명상의 내면적인 치열한 갈등을 그리고 있다고 본다. 글쓴이 개인적으로 모음곡 제2번과 6번 연주는 아직까지도 카잘스를 능가하는 해석은 없다고 생각한다.

2)피에르 푸르니에/ ARCHIV

피에르 푸르니에(Pierre Fournier/ 1906∼1986)는 프랑스 파리 태생으로 수려한 용모와 귀공자같은 품위가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하지만 그는 소아마비 환자로 오른쪽 다리 전체가 불편한 사람이었다. 피아노에서 첼로로 전환한 계기도 그의 신체장애 때문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첼로 연주에서도 그러한 불리한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그는 보통사람보다 몇 배나 연주하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신체 장애자들의 연주에서 발견되는 공통현상중에 하나가 바로 순수성이 고차원적으로 발현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발햐를 보면 더욱 그것이 두드러진다. 푸르니에의 연주 역시 조금의 불순물도 허용하지 않으리 만큼 깨끗하고 정갈한 맛이 난다. 거의 감정의 기복이 없으면서도 뜨거운 정열을 곡 깊숙히 느낄수 있다. 그지없이 투명한 음색도 훌륭하며, 기교를 별로 부리지도 않는다. 이른바, 무기교의 기교가 어떤 것인지를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격조 높은 연주이다. 지속음을 처리하는 능력도 어떤 첼리스트보다 탁월하여 화성적인 측면을 잘 부각시켜주는 연주를 들려준다. 카잘스 이래 가장 이곡을 잘 연주한다는 평가가 결코 헛된 말이 아님을 알수 있을것이다.

그가 연주에서 시도하는 패러다임은 아마도 헨릭셰링이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해석하는 그것과 유사하다고 본다. 외형적인 표정은 무뚝뚝하기 이를데 없지만, 곡의 중심부에 들어가면 용광로 같은 뜨거운 정열이 내재되어 있음을 느낄수 있을것이다. 표현에 있어서의 엄정한 면과 음악 내용에 있어서는 낭만적 정서가 대위선율처럼 어우러져 강력한 멧세지를 발산하고 있다. 푸르니에의 이 음반은 카잘스 그것과 더불어 많은 애호가들에게 최고의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무반주 첼로 연주에서 또 하나의 표준처럼 추앙 받고 있다. 음악이 주는 품위와 높은 정신성은 현대 첼리스트들이 반드시 본받아야 할 것이다. 푸르니에가 '첼로의 왕자'로 불리는 게 괜히 붙여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의 연주가 발산하는 단아함, 균형감, 우아함은 카잘스이후의 무반주 첼로의 역사에 큰획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전곡을 별 하자없이 잘 연주하는 첼리스트라 생각되는데, 특히 개인적으로 모음곡 제1번, 제3번, 제4번, 제5번등의 연주는 오히려 카잘스를 능가한다고 생각한다. 아래글은 최은규님의 아코드 발매의 푸르니에의 다른 음반에 대한 리뷰인데, 아르히브판에도 공히 적용될 수 있는 리뷰같아서 부가한다.(이상 글쓴이 생각)

“이 음반을 들으면 두 가지 점에서 놀라게 된다. 우선 무반주 단선율을 입체적이고 다성적으로 표현해내는 그의 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푸르니에의 연주를 들어보면, 그의 프레이징과 다이내믹 설정은 결코 즉흥적인 감각에 따른 것이 아니라, 이 곡에 대한 구조적 이해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가 연주하는 음악에는 '나아갈 때'와 '들어갈 때', 그리고 '정지'와 '운동'이 적절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그의 변화무쌍한 연주를 들으면 앞으로 나올 선율이 어떻게 표현될지 묘한 기대감을 갖게 되며, 음악을 듣는 즐거움이 더 배가된다. 단선율 속에서 몇 가지 성부를 끄집어내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계층적으로 파악하여 각 악구마다 표정을 달리하는 그의 연주는, 지성적인 연주의 표본이 된다. 그러나 더욱 감탄하게 되는 것은, 구조적 중요도에 따라 계층적으로 분절된 각 악구들이 놀랄 만큼 매끄럽게 연결된다는 점이다. 구별된 악구들은 음색과 음량의 차이를 보이지만, 모두 하나의 숨으로 연주된다. 멜로디는 결코 끊기는 법이 없이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호흡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것은 활의 압력과 길이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그의 뛰어난 테크닉에 힘입은 효과이기도 하겠지만, 더욱 근본적으로는 바흐 음악을 보는 그의 깊고 넓은 안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푸르니에가 들려주는 바흐는 미세한 구조에서부터 전체적인 통일성에 이르기까지 이 음악에 대한 철저한 이해에 바탕을 둔 명연이라 할 수 있다. (최은규 님 글중에서)”

푸르니에에 대해서 잘 알고싶은 분은 아래로 가보세요!

3)안너 빌스마/ SONY/ 92년 앨범

안너 빌스마는 현존 첼리스트 가운데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가장 잘 연주하는 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사용하는 악기는 원전악기인데, 양의 창자를 꼬아서 만든 거트현을 달아서 그때 당시의 악기와 음색을 복원하여 연주한다. 강철 현에서 느끼지 못하는 부드럽고 가라앉는 음색을 거트현만이 표현해 낼 수 있다. 그렇지만 현 자체의 낮은 인장력 때문인지(정확히 단정할 수는 없지만 원전 연주가 거의 그러함) 모르겠으나 반음낮게 튜닝하고 연주한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연주시 많은 어려움도 따르는듯하다. 지기스발트 쿠이켄이 샤콘느 연주시 애를 먹는것과 마찬가지로, 빌스마도 연주시에 힘든 점이 있음을 음반을 통해서 확인할수 있다. 현주시 현이 늘어나서 발생하는 전혀 의도하지 않은 장식음 처리화는 그를 무척 곤혹스럽게 하는 것 같다. 또한 제3번 6번처럼 파워풀한 느낌을 전달하는 모음곡에서 바로크 첼로는 다소 허느적거리는 모습이 감지되는데, 악기 자체의 연주상의 한계에 기인하는 것 같다. 그러나 빌스마는 그래도 별무리없이 소화해낸다. 거트현 첼로를 그다지 어색하지 않게 연주를 해낸다. 더구나 빠른 부분의 연주에 있어서도 악기자체의 한계를 뛰어 넘는 것 같다. 거트현의 거친 숨소리같은 잔향도 매우 친숙하게 느껴진다.

카잘스가 그렇듯이 안너 빌스마도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완전히 장악하고서 연주하는 연주자중의 하나인데, 그는 특히 전주곡을 잘 연주한다고 보여진다. 템포의 완급 변화를 통해서 곡의 분위기를 일신케하고 있으며 곡의 대비감을 두드러지게 한다. 이러한 느낌이 가장 현저한 것은 제1번과 제5번이며, 빌스마의 이 연주는 무반주 전체를 통틀어 단연코 최고라 생각한다.

3.글쓴이는 별로이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선호하는 음반

1)야노스 슈타커/ MERCURY(1963-65), RCA(1995)

야노스 슈타커의 음반은 일반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다. 다르게 생각하는 분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RCA음반(신반)이 머큐리음반(구반)보다는 음악적 성숙도라는 측면에서 좀더 나은 것 같다. 다만 양 음반 모두 녹음상태를 보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명반으로서 갖추어야할 가치를 약간 일탈하지 않나 생각한다. 연주가 너무 모호한 음색으로 녹음되어 있어서 호소력을 반감시키고 있으며, 연주시 발생하는 잡음도 다소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본다. 물론 가장 짜증나는 것은 잡음보다는 모호한 음색이다. 바흐의 어떤 장르의 음악도 모호하게 처리하여 성공할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외형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곡이 호평받는 이유는 음악을 꾸려가는 능력을 높이 평가한 결과라고 본다. 그의 음악을 들어보면 뭐랄까 삶의 향취가 느껴진다.(글쓴이 생각)

“슈타커의, 아마 생애 마지막이 될지 모를, 92년 최신녹음(RCA)은 초중기녹음(EMI: 1957∼1959, Mercury: 1963∼1965)에 비해 음색이 너그럽고 온화하다. 흐트러짐과 무리한 비약을 찾아볼 수 없는 논리 정연함은 그대로지만 노트에 충실하고 감정표현을 절제하는 금욕적 성향은 훨씬 누그러졌다. 유연한 흐름(3번 프렐류드)이 있고, 영감(3번 사라방드)과 확신(5번 가보트)이 지배한다. 템포는 1번을 제외하고, 전곡을 통틀어 유장해졌다. 특기할 것은 6번의 알르망드가 나머지 다섯곡의 알르망드에 비해 가장 느리고 부드러운 레가토로 연주되는 곡인데, 슈타커의 신 녹음에선 5번 알르망드가 가장 느리다. 58년 EMI반에서 4분44초로 처리된 5번 알르망드는 RCA반에서 7분26초로 꿈꾸듯 느긋하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이상적 연주란 어떤 것일까. 진지함 심오함 엄격함 따위의 정신성과 바흐도 분명히 지녔을 가슴(감정)의 조화일 것이다. 말하자면 구조적 접근과 낭만적(랩소디적) 해석간의 균형이다. 대체로 슈타커는 전자, 푸르니에와 장드롱이 후자, 그 중간에 카잘스가 놓인다. 엄격한 아카데미즘에 시정을 실어, 정신이 깃든 「교회당」에서 사람이 사는 「집」을 지향한 슈타커의 최신연주는 그런 편가르기를 수정하라고 말한다.(김용운님 글중에서)


2)무스티슬라브 로드스트로포비치/ EMI

로드스트로 비치의 연주에 대해서도 상반된 평가가 내려지는 것 같다. 명성에 비하여 그다지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견해와 최고의 첼리스트 답게 무난히 이 음악을 소화하고 있다는 견해가 나뉘어지고 있는 것 같다. 글쓴이 개인적 입장으로는 그다지 후한 점수를 주고 싶지 않다. 다만 연주 자체가 듣기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인 것으로 본다. 어쨌던 이 음반은 국내외에 많은 지지자를 얻고 있다. 글쓴이가 이 음반을 들으면서 느낀 점은 음악을 너무 관능적으로 처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글쓴이 생각) 아래에 로스트로포비치 음반이 출시하였을 즈음에 나온 재미있는 신문기사가 하나 있다.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바흐에 대한 그의 경외심은 신중하면서도 사려 깊은 해석, 달관의 연주로 곡을 지배한다. 경쾌함 (1번) 슬픔과 격정 (2번) 빛남 (3번) 장엄 (4번) 어두움 (5번) 햇빛 (6번)으로 표현되는 6곡 가운데서 특히 장엄한 교향악에 비유되는 6번곡에서 로스트로포비치는 듣는 이의 가슴을 활로 그어 감동을 울려내고, 바흐의 천재성이 번득이는 5번곡의 사라방드 악장에선 변화무쌍한 기교를 펼쳐보인다. 로스트로포비치는 프로코피에프의 첼로협주곡 2 번(1952), 쇼스타코비치의 2개의 첼로협주곡(1959-1966), 브리튼의 첼로심포니(1964), 브리스의 첼로협주곡(1970) 등 수많은 곡을 초연한 우리시대 최고의 첼리스트. 본처인 볼쇼이 오페라의 프리마 돈나 갈리나 비시네프스카야를 두고 독일의 자존심 안네 소피 무터(바이올린)를 미혼모(?)로 만들어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 태어나 모스크바 음악원서 공부한 로스트로포비치는 워싱턴 내셔널심포니-런던심포니 등을 지휘, 쇼스타코비치음악의 탁월한 해석가로도 이름을 얻었다.(김용운님 글중에서)

4.논란이 있을 수 있는 음반들

이들 음반들은 애호가에 따라 선호도가 극명하게 대립되는 음반인 것 같다. 글쓴이도 아래의 것들 중에서 좋아하는 것도 있고 듣기를 꺼려하는 것도 있다. 이른바 자신의 기호가 음반 선택을 좌우하는 그런 일이 무반주 첼로 모음곡 음반에서는 심심찮게 일어남을 알수있다. 여기에 이르면 호불호의 판단은 개인의 성향에 달려 있다. 스스로 판단해 보아야 할 것이다!

1)장 막스 클레망/ DECCA

음반 평론가 최은규님이 비교적 후한 점수를 주는 음반이다. 글쓴이도 상당히 애호하는 편이다. 특히 제1번과 제6번 연주는 매우 직설적이고 아름다움을 주는데,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편이다. 이 음반에서 마이너스 요소로 지적되는 것들은 비브라토가 때때로 너무 거칠고 과하다는 것이다. 특히 종지 부분에서의 과도함은 좀 오버하는 것 같다. 또한 건반 악기적으로 연주할 부분에서 지나치게 선율적으로 연주하여 엄정함을 실종시킨 것도 단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래도 이 음반이 매력적인 것은 여기에서 클레망은 첼로의 남성적인 아름다움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글쓴이는 그의 연주를 상당히 좋아한다.(글쓴이 생각)

“그가 연주하는 바흐 무반주첼로 모음곡 1번의 첫 프렐류드를 듣는순간부터 그 비범한 연주에 빨려들게 된다. ‘음악에서 한가지 위험한 것이라면, 악보대로 연주하는것‘ 이라고 말할 정도로 클레망은 자유롭다. 그에게 있어서 음악이란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변화되어야하는 생명체인 것이다.............’아름다운 소리보다는 개성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그 자신의 연주관에 따라 그는 거칠고 굵은 소리를 내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다음 순간 어떤 소리가 들려올 것인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하게 연주한다. 원전 연주의 엄격한 주법에 정면으로 대항하듯 그의 주법은 철저하게 비정격적이다. 그는 세 음이나 네 음으로 이루어진 코드를 한 번에 연주하지 않고 둘 씩 나누어 연주함으로써 고음악의 주법을 거부하고, 활을 현에 밀착시켜 연주해야 할 부분에서도 활의 튀어오르게 하는 스피카토 주법을 서슴지 않는다. (최은규님글 중에서)”

2)랄프 키르쉬바움/ 버진

음악 평론가인 양현호씨(제가 본적은 없지만 글을 통해서 아주 존경하는 분임)가 극찬하는 음반이다. 카잘스를 뛰어 넘을 만큼의 감명을 준다고 그분은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분의 견해에 대해선 반대의 평가가 있을 수 있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사랑하는 여러분들이 직접 평가해 보시기를 꼭 권하고 싶다. 글쓴이는 좀 회의적이다.(글쓴이 생각)

“키르쉬바움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연주는 한마디로 경이롭다. 그것은 이 모음곡 역사상 가장 뛰어난 해석을 들려준다는 것으로 유명한 전설적인 카잘스의 연주를 뛰어넘는 것이다. 우선 완벽한 조형감을 지녔다는 점에서 로맨틱한 자의가 덧붙여진 카잘스의 연주에 비해 훨씬 정교하며, 표현의 섬세함에 있어서도 다른 어떤 첼리스트들보다 탁월하다. 또 현대의 많은 첼리스트들이 놓쳐 버렸던 영혼의 감정이입에서도 거장 카잘스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키르쉬바움의 연주에는 한음 한음에 모두 깊은 영혼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음색의 아름다움이나 울림의 깊이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예컨대 제2번이나 제5번의 사라방드에서 우리의 영혼을 매혹하는 깊은 흡인력은 그와 같은 깊고도 섬세한 울림이 아니고서는 결코 얻을수 없는 것이다.(양현호님의 글중에서)”

3)다닐 샤프란/ Aulos 클래식

이 음반도 위에서 언급한 양현호씨나 안동림씨 같은 평론가들이 칭찬하고 있는것이다.. 이 음반에 대해선 글쓴이는 약간 회의적이다. 무반주곡을 이렇게 선율적으로 연주하는 것도 그렇고, 비브라토를 이렇게 적극적으로 사용하여도 과연 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또한 곡의 외향적인 면에 있어서도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흐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안동림 선생님 같은 분들은 “우리를 깊은 명상과 달관의 경지로 승화 시켜주는 불멸의 선율로 샤프란의 무반주(음반 내지)”를 칭찬하고 있다.

4)요요마(바흐로부터의 영감)/ SONY

요요마의 음반에 대해선 역시 헐리웃 수준을 못 벗어난다는 혹평과 바흐의 현대적 의미를 잘 부각시키고 있으며 특히 종합예술의 영역으로 격상시킨 점에 대해서 나름의 평가를 하여야 한다는 찬사가 대립될수 있다. 순수한 음악 하나만을 놓고 본다면 그의 무반주는 다른 명인들에 다다를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영상과 매치된 그의 음악은 현대적 의미를 잘 깨우쳐 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는 요요마의 해석에 대해서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제3번, 5번 연주는 상당히 설득력을 가지게 하는 훌륭한 해석이라고 본다. 가격이 만만챦은게 흠이지만, 이 모음곡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그의 바흐로부터의 영감이란 타이틀이 붙은 DVD음반을 꼭 구해 듣기를 권하고 싶다.(글쓴이 생각)

"제가 바흐의 모음곡에서 특별히 느끼는 점은 시간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는 저만이 느낀 것이 아니겠죠. 이 곡들은 어떤 특정한 시간과 공간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세대를 관통하는 음악의 기본적인 힘을 향하고 있습니다. 역시 그렇기 때문에 많은 첼리스트에게 독주 레퍼토리 중 가장 매력적인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겠죠. 저는 이 작품을 네 살 되던 해부터 한 번에 두 마디씩 익혀나가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의 지적이며 감성적이고 영적인 힘들은 일생에 걸쳐 제게 힘을 주고 있습니다.(요요마 자신의 그의 음반에 대한 생각-98년 객석 4월호 157면)"

5)피터 비스펠베이/ 채널 클래식(구반, 신반)

최근 국내외에서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고 하지만, 글쓴이 생각은 다르다. 비스펠베이의 연주는 가장 기대를 가지고 듣게 되지만 또한 가장 많이 실망을 하게 되는 그런 연주이다. 어떤 부분은 지나치게 뻣뻣하다는 느낌을 주고, 어떤 부분은 너무 기교를 부려 감정이 과잉되게 만든다는 점이 실망스럽다. 최근 레코딩은 전체적으로 구반보다 못하다고 본다. 구반을 듣고 좀 괜찮다고 느꼈는데, 신반은 개인적으로 호감이 가지 않는다.(글쓴이 생각)

“ ................ 첫번째 녹음보다 템포 루바토의 사용도 늘어났고, 다이내믹의 폭도 약간 넓어졌다. 전반적으로 템포도 빨라졌고 풍성한 느낌을 주고 있어, 원전연주가 줄 수 있는 경직성은 크게 완화되어 있다............. 이 음반을 다 듣고 나서야 필자는 왜 비스펠베이가 이 곡을 다시 녹음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비스펠베이의 첫 녹음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으로 시작되었고, 그 후 비스펠베이는 바로크-고전과 낭만-현대를 오가며 많은 곡들을 연주, 녹음하여 레퍼토리를 늘려왔다. 그러는 동안에 낭만-현대 레퍼토리를 연주하면서 얻은 아이디어를 바흐 곡에 적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이다. 풍성한 잔향이 잘 포착되어 있고, 또 거트 현의 까칠까칠하면서도 여린 음색도 남김 없이 잡혀 있다. (윤정열님의 글 중에서)”

6)미샤 마이스키/ DG

이 음반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평가가 그다지 후한 편이 아닌것 같다. 글쓴이도 이 연주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음악을 구축하는 면에서 조형감이 떨어지고 너무 과잉되게 감정처리를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7)모리스 장드롱/ 필립스

모리스 장드롱(Muarice Gendron(1920∼1990)의 이 연주는 개인적으로 단점도 장점도 별로 발견되지 않는 그런 연주인 것 같다. 현대 악기로 연주한 연주자로 예외적으로 제5번을 스코르다투라로 연주하고 있다고한다.

8)그밖의 음반들/ 그밖에도 글쓴이가 듣지 못한 많은 음반들이 레코딩되어 있다.

5.편곡 음반들

이들의 연주는 우선 그들의 대단한 음악적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편곡 자체가 주는 힘든 특성, 연주자체의 곤란성등이 원곡연주보다 더한 힘든 과정이 될수 있기 때문이다. 바흐 자신이 편곡의 대가였던 만큼, 이런 편곡음반도 넓게 보면 바흐의 정신에 포섭될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의미있는 작업일것이다. 다만, 음악의 정교성이란 측면에서 보면 아무래도 원래의 모습이 그리워지게 된다. 그럼에도, 음악의 내용적 확대와 구체화라는 측면에서 이들의 노력도 경시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편곡 연주로는 ①guitar 편곡음반. 10현 기타 편곡음반, ②플룻 편곡음반, ③비올라 다 감바 편곡음반/ 파울로 판돌포 연주, ④더블베이스 편곡 음반등이 존재한다.

Ⅵ.글쓴이가 가장 아끼는 음반들

제1번: 안너 빌스마 92년판/ 피에르 푸르니에/ 장 막스 클레망/ 카잘스

제2번: 카잘스(일본 복각판)/ 피에르 푸르니에=안너 빌스마 92년판

제3번: 피에르 푸르니에/ 요요마 DVD음반/ 카잘스

제4번: 피에르 푸르니에=안너 빌스마 92년판

제5번: 빌스마 92년판, 79년판=요요마 DVD음반=푸르니에/ 카잘스=클레망

제6번: 카잘스(일본 복각판)=클레망=슈타커(RCA반)/ 푸르니에/ 비스펠베이 98년판

Ⅶ.글을 맺으며

글쓴이는 음악도가 아닙니다. 그냥 바흐를 너무도 너무도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이랍니다. 바흐를 듣다보니 어느새 바흐는 나의 정체성의 일부를 형성하게 되었으며, 잠시도 바흐를 멀리 할수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휴식을 취할때나, 잠자리에 들때나, 아침에 눈을 뜰때나, 밥을 먹을때나, 항상 바흐는 나의 절친한 벗이 되어 버렸답니다. 친한 친구 여러 명을 대체할 정도의 그러한 벗들 말입니다. 바흐는 이제 내 삶의 일부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결코 한쪽방향으로 정서가 쏠려 있지도 않고 연주자 더 나아가 감상자가 생각하는 대로 탄력적으로 움직여주는 고무줄 같은 음악이 바로 이 바흐 같습니다. 그 움직임의 폭은 끝간데를 알도리가 없으니깐요! 글쓴이의 바흐에 대한 믿음은 이렇습니다.

“바흐음악는 규정되었다기 보다는 규정 되어진다고 보아야 하고, 완결되었다기 보단 해석되어질 뿐이라고~~~~~~~~!

이상 저의 이야기와 간간이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 만큼 아직도 현재 진형형인 작품은 그다지 흔치 않을거라고 봅니다. 좀더 객관적인 음반에 대한 평가를 위해서는 직접 음반리뷰를 보시는게 이곡의 이해를 넓히는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열심히 듣고 열심히 읽으시면 스스로 판단하시게 될 것 입니다. 그리고 저의 평가에 가려진 여러 명인들께는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어떤 연주자들이든 저 거대한 곡들을 연주하려면 몸을 사르는 각고의 노력을 하였을 터인데 음악 감상자라는 특권으로 그분들의 노력에 재를 끼얹지 않았나 싶네요! 양해를 구해야 겠지요!


-END-